동아리방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몰랐다. 노트북을 켜 놓고 졸업작품 이것저것 해보느라, 아니 사실은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 앉아 있는가? 요즘 매번 그렇다. 목표 의식이 없다. 그리고 뭔가 일에 대해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뭐가 문제라서 그런 것일까? 11시쯤 동아리방을 나왔다. 아까 전화했었던 친구가 당구장에 있다고 했었지? 약간 여유있게 출발했던 건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 친구들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금 걸음을 빨리 해 당구장에 도착했더니, 친구들이 이제 왔냐며 반겨준다.
곧 있으면 전철 막차가 출발할 시간이다. 잠깐 당구장에 들러 당구를 치는 친구들을 보다가 서둘러 당구장을 나왔다. 휴대폰을 꺼내어 시계를 한 번 봤더니, 그래도 이 정도 여유라면 느릿느릿 걸어서도 막차는 탈 수 있겠군. 그런 생각이 들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언제나 봤던, 지나갔던 길인데도 느리게 걸으며 구경하는 주변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고개를 돌려 저쪽을 보니, 마침 전철 하나가 저쪽에서 조용히 들어온다. 이 전철은 지금부터 냅다 뛰어도 타지는 못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고, 또 지금 전철 하나가 들어왔으니 다음 전철은 못해도 5분은 있어야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하나를 꺼내어 물었다. 불을 붙이니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담배 연기가 가슴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하늘을 보며 담배연기를 내니 자욱한 안개가… 하늘이 뿌옇게 변했다. 바람이 불었는지 담배연기가 뒤로 흘렀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더니, 여자 두 명이 나처럼 전철을 타러 가는 것 같았다. 괜히 담배연기를 그들에게 뿌린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들이 내 앞으로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다시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막차 시간의 전철역 앞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냥 불만 켜진 관람 시간 넘어간 아주 오래된 유적 같은 느낌이다. 몇 명이 웃으며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또 어떤 커플은 구석에서 서로 껴안고만 있다. 그런 사람들 사이를 지나 교통카드를 찍고 지나간다. 계단을 내려가 알림판을 보니 전철은 전 역을 출발했다고 써 있었다. 곧 있으면 전철이 들어온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언제나처럼 7-3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정역 계단 앞에서 내리려면 7-3에서 타야 하는 것이다. 걸어가는 도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걸어가서 타는 것과 내려서 계단까지 걸어가는 것은 도대체 무슨 차이인걸까? 그렇게 하면 과연 몇 초나 시간이 단축될까? 의미없이 서 있는 시간 30초 정도?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전철 안은 이상하게 사람이 많았다. 원래 막차에는 항상 자리가 남고는 했는데 이상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빈 자리가 있어도, 그 옆에는 엉망으로 취한 취객이 있었다. 그 곳에는 앉고 싶지 않아 그냥 출입문 앞에 섰다. 무심코 밖을 보니 칠흑같이 어두운 밤, 불빛이 긴 선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 다음 불빛은 먼저 지나간 불빛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그 불빛,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코 따라잡지는 못할 텐데… 그러다 보니 갑자기 든 생각은…
너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거냐?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아니 그 전에, 어떻게 하면 제대로 사는 것일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것?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 열심히 살면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일단 정답이 저게 맞는걸까.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어떻게 하고 싶은거 다 하면서 살겠어요? 그렇게 살면 진짜 행복한 사람이죠.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사람은 몇 명 없다는데요.
얼마 전에 후배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거 다하면서 사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고 했던 그 말. 그때 든 생각은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하고 싶은 것들 하지 못하고 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럼 제대로 산다는 그거, 그것은 열심히 사는것을 말하는 것은 아닌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것은 알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제대로 살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뭔가 한스러움 같은 것이 느껴지고… 작은 후회도, 또 슬픔과 안타까움, 패배감 같은 것들이 가슴 속에서 날뛰는 듯 했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지, 이제 조금 있으면 서른이 될 이 나이 먹도록 알지 못했는데…
얼마 전 다른 후배는 요즘 내가 짜증나는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걸 본 모양이다. 그래서 같이 커피를 먹으며 조심스레 내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뭐가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거냐고 말이다. 그래서 그냥 대답했다. 사실은 뭐 때문인지 나도 잘 모르니까 말이다. 이유를 몰라 짜증이라고, 집중을 할 수가 없다고, 지금 뭔가 크게 어긋난 것 같은데 알 수가 없다고… 그 얘기를 들은 후배는 우유를 살짝 마시더니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형이 휴학하는 그 때 말이에요. 그때 일이었는데, 세상이 짜증나고 화나서 뭐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자신이 한심해 보이고 말이에요. 그래서 형 휴학하는 도중에, 제가 한 달 동안을 학교에 안왔어요. 뭐 남들처럼 학교 다니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게 내 현실인가 싶어서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도 열심히 했고, 뭐 학교는 안 왔어도 듣던 과목들이 전공이라 프로젝트나 과제는 해야 했으니까요. 잠도 잘 못자고 그렇게 살았어요.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열심히 산 거죠. 그러다보니 어떻게 지금까지 왔네요. 예? 지금 행복하냐구요? 뭐…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다른 건 알거 같아요. 지금 아무리 짜증나는 일 있어도, 그때만 하겠냐 이거죠. 그래서 그때 생각하면… 지금 힘든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전철이 어느새 금정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한 걸음 내딛어 전철에서 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머리에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계단을 올라… 카드를 찍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 금정역 할렘가 쪽 입구로 나오자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비는 우산을 써도 젖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뒤에서 계단을 내려오던 사람이 비를 보더니 결심한 듯 가방을 뒤집어 쓰고 뛰기 시작했다. 비속을 뚫고… 그렇게 달리기 시작하더니, 곧 주차된 차들에 가려 더이상 그 사람의 뒷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는 붉게 치직- 하고 타올랐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니 기분이 조금은 괜찮아진거 같았다. 이 비는 언제 그칠까. 그렇게 퍼지는 담배 연기를 보고 한참이나 서 있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담배 연기는, 사라질 듯 하면서 사라지지 않고 거기 내 앞에 계속 떠 있었다. 그걸 계속 바라보다 나는, 가방을 힘껏 움켜쥐고 빗속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곧 머리가 젖고, 옷이 젖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정류장을 향해 계속 뛸 뿐이었다.